칼 로저스의 생애가 이론에 미친 영향
로저스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교외에 있는 오크파크에서 5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건축가이자 청부업자였기 때문에 집안은 경제적으로 부유한 편이었다. 어릴 적 그의 가정은 규율이 엄격한 정통 기독교 집안이었는데, 그는 부모님의 양육 태도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은 우리 집에서는 용납이 안 된다. 많은 사람들은 카드놀이를하고, 영화를 보러 가며, 담배를 피우고, 춤추고, 술 마시고, 그 밖에 여러 가지 활동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더 잘사는 법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과 가까이 지내며 교제한다든지, 그들을 가족 안에 끌어 들여서는 안 된다.
이 같은 이유 때문인지 그는 이웃과 교류가 거의 없었으며, 친구도 사귀지 못하였고, 대부분의 시간을 사색과 독서로 보냈다. 부모님과의 관계에 대하여도 이렇게 회고하였다.
부모님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부모님과 내 마음속의 생각이나 느낌을 나누는 일은 전혀 없었다. 얘기를 한다 해도 판단하거나 지적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생각, 환상 그리고 이런저런 감정을 마음속에만 간직해 두었다.
혼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어린 시절을 그는 외로웠다고 표현하며, 또 그 외로움이 상담과 심리치료에 흥미를 가지게 된 직접적인 이유가 되었다고 하였다. 또한 그의 이론에서 주장하는 '가치의 조건화'라는 개념은 어린 시절 부모의 가치를 그대로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여 바깥세상을 인식하게 된 로저스 자신의 경험에서 비롯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는 위스콘신대학교에서 농업을 전공하고, 교회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면서 목사의 꿈을 꾸게 된다. 그리고 대학 시절 중국 북경에서 개최된 국제기독학생연합회에 12명의 미국 대표 중 한 사람으로 참석하여 6개월간 중국에 머물면서 다양한 종교와 문화적 특성을 지닌 외국인들과 만나게 된다. 이를 계기로 "나는 나 자신의 사고방식대로 생각할 수 있고, 나 자신의 결론에 도달할 수 있으며, 나 자신이 믿는 바에 따라 행동할 수있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로저스는 부모에게 매여 있던 종교적 연대에서 자유로워진다. 종교에 대한 내적 혼란을 겪은 후에 스스로의 가치관을 정립하게 되면서 그는 신학을 포기하고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졸업 후 그는 어린 시 절부터 친구이며 대학동창인 헬렌 엘리엇(Hellen Eliot)과 결혼하여 두 딸을 낳았다. 그는 대학에서 듀이의 제자인 킬패트릭(William Kilpatrick)의 영향을 받아 학습의 자유사상을 갖게 된다. 또한 아동생활지도연구소에서 정신분석을 지도받고, 사범대학에서는 과학적인 행동 주의를 접하게 된다. 1931년 임상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로저스는 로체스 터의 아동학대예방협회에서 12년간 있으면서 랭크의 영향을 받게 된다. 로저스는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석사(1928)와 박사(1931)학위를 받으면서 이 대학의 아동생활지도연구소에서 실제 내담자를 대상으로 최초로 상담을 한다. 또한 그는 이곳에서 정신분석 학자들의 지도를 받아 정신분석적인 관점을 배우게 된다. 이와 동시에 콜롬비아 대학 교 사범대학에서 손다이크(Edward Thorndike)의 영향을 받아 행동주의 관점을 학습하게 되는데, 이 두 가지 관점을 모두 경험한 로저스는 이들 사이에서 갈등하게된다. 로저스는 당시 자신은 "완전히 다른 두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 같았으며, 양자가 결코 조화를 이룰 수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라고 회고하면서, 그러한 갈등 상태에서의 학습이 가장 가치 있는 경험이었다고 술회하였다(Rogers, 1961). 결국 로저스는 정신분석과 행동 수정을 융합하고 이를 승화시켜 새로운 상담이론을 주장하게 되었으니 여기에 그의 위대성이 있다. 로저스는 1942년 상담과 심리치료(Counseling and Psychotherapy: Newer Concepts in Practice)』라는 책에서 당시 지배적이었던 정신분석과 행동 수정의 지시적 상담에 반하는 비지시적 상담을 주장하였다. 1951년에는 내담자 중심치료(Client-Centered Therapy)』를 출판하면서, 제한된 의미를 내포하는 비지시적이라는 용어 대신 내담자 중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내담자 속에 있는 성장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1974년 이후에는 인간에 내재된 잠재력을 실현시킴으로써 내담자가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는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돕는다는 의미를 고려하여, '내담자 중심'을 '인간 중심으로 수정하여 사용하였다. 그가 주장하는 치료자가 지녀야 할 세 가지 태도, 즉 진실성, 수용 및 공감은 인간의 다양한 행동에 적용되었다. 로저스는 인생의 후반기에 국가간의 분쟁을 다루고 세계 평화를 증진하는 일에 힘을 쏟았다. 그 는 많은 학술단체의 회장직을 역임했으며, 미국심리학회에서 우수과학 공로상(1956), 우수공로자상(1972)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87년 8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여행과 집필을 계속하며 열정적으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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