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심리학

커텔의 생애와 인간관

by 울디 2022. 8. 8.
300x250

커텔의 생애

 레이몬드 커텔은 1905년 영국의 스태퍼드샤(Staffordshire)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린 시절에 알려진 바는 그리 많지 않지만, 엄격함과 허용이 적절히 조화된 부모님 의 양육을 받았으며, 대체로 행복한 아동기를 보냈다고 전해진다. 1914년 커텔이 9세 가 되던 해에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그는 어린 나이였지만 전쟁으로 부상을 입고 죽음을 당한 군인들을 보고 인생의 덧없음을 느꼈다고 한다(노안영 공저, 2013, p. 261). 그는 16세에 런던 대학교에 입학하여 학부에서 물리학과 화학을 전공하면서 화학자인 멘델레예프(Mendeleyev)의 원소 주기율표에 크게 탄복하여 자신도 성격을 구성하는 요 소들을 찾아내는 연구에 평생을 바쳐야겠다는 결심을 하였다고 전해진다(민경환, 2002). 졸업 후에는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어 1924년 런던 대학교에서 물리학이나 화학보다 인간 정신을 연구하는 심리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심리학 대학원 과정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인간의 지능에 대해 이요인설을 주장한 유명한 심리학자이자 통계학자인 스피어만을 만나게 된다. 그에게서 요인 분석에 대하여 배우고, 후에는 커텔 자신의 특질이론에 이 분석 방법을 활용하였다.

1929년에 박사학위를 받고 난 후, 몇 년은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닌다. 그 기간 동안에 과로, 영양 결핍, 만성 소화 장애 등을 겪었으며, 생활고와 일에 지나치게 몰두 한 나머지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게 된다. 커텔은 박사학위를 받은 지 8년 정도 지난 후 인 1937년에 손다이크(Edward Thorndike)로부터 콜롬비아 대학교의 초빙을 받고 그와 같이 일하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다. 손다이크는 도구적 학습이론으로 유명한 행동주의자로서 커텔의 성격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1939년에 클라크 대학교를 거쳐 1941년에 하버드 대학교에 재직하게 된다. 이때 그는 올포트, 머레이, 셀돈 등과 교류를 하게 된다. 40세가 되던 1945년에 일리노이 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연구교수 겸 성격 측정 실험실 소장으로 30년을 재직하였다. 수학자였던 두 번째 부인은 그의 성격 연구에 주요한 동역자가 되었다고 한다. 1953년 에는 심리학에 대한 공적을 인정받아 뉴욕 과학기술원에서 웨너-그렌상을 수상하였다. 1960년에는 다변인 실험심리학회의 창설을 주도하여 초대 회장을 지내기도 하였다.

 그의 연구물과 저서는 놀랄 정도로 방대하다. 위긴스(Wiggins, 1968)에 따르면, 커텔 은 1960년대 중반의 3년 동안 네 권의 책과 12편의 장과 40편의 논문 등을 합하여 4,000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을 출판하였다고 한다. 그가 매일 밤 11시까지 연구에 매진했던 것을 알려 주는 에피소드가 있다. "나는 밤에 주차장에서 내 차를 매우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남아 있는 차가 내 차밖에 없었기 때문이다."라는 농담 섞인 그의 말은 그의 연구 활동이 얼마나 왕성했는지를 확연히 보여 준다. 대표 저서에는 『성격의 기술과 측정(Description and measurement of personality, 1946)』, 『성격: 체계적, 이론적 및 사실적 연구(Personality: a systematic theoretical and factural study, 1950)』, 『성격의 과학적 분석(The scientific analysis of personality, 1966a)』 등이 있다. 그는 대학에서 20년 동안 심리학 교수직에 있었고, 성격평가 실험실을 운영하였으며, 이 기간에 200여 편 이상의 논문과 15권의 책을 저술하였다. 1998년 93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커텔의 인간관

  1. 중립적 인간관: 커텔은 모든 인간에게 존재하는 보편적인 특질을 찾아내고, 그 특질들로 인간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에 대하여 특정한 관점을 제시하지는 않았다. 다만, 특질들이 어떻게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행동을 유발하는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두었다. 그는 인간이 여러 특질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는데, 예를 들어 인간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근원 특질은 정서적 불안정과 안정, 신뢰와 의심 등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다 갖고 있다. 따라서 그는 인간을 긍정도 부정도 아닌 중립적인 존재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유전론과 환경론의 양자적 인간관: 커텔은 인간의 행동이 유전적인 요인과 환경적인 요인 모두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 장한다. 유전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근거로는 원천 특질과 역동적 특질 중 에르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원천 특질은 타고나는 기질적인 특질이며, 역동적 특질인 에르그도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는 선천적인 특질이라고 하였다. 다음으로 환경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는 근거는 표면 특질과 역동적 특질 중 감정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을 통해 알 수 있는 표면 특질은 후천적인 경험에 의해 형성되는 특질이며, 역동적 특질 중 감정도 경험적인 특질이라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쌍둥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지능의 경우 유전이 80%이고, 환경이 20%라고 하였다. 이와는 반대로 신경증에 대한 연구에서는 유전적 원인이 30~40%이며, 환경적 원인이 60~70%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점들을 종합해 볼 때, 그는 인간이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동시에 받는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 자유론적 인간관: 커텔은 인간의 성격을 '일관성이 있는 특질들의 집합'이라고 보고 있지만, 성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바뀔 수 있다는 자유론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인간의 성격이 태어나서부터 노년기까지의 인생 전반에 걸쳐 변화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 점을 시간의 경과나 혹은 상황에 따라서 변하는 특질 연구로 밝히고 있다. 또한 핵심 개념 중의 하나인 '역동적 격자 도식'을 살펴보면, 개인의 에르그, 감정 그리고 태도와 같은 역동적 특질은 일정한 방향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역동적 특질이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커텔은 인간을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자유론적인 존재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전체론적 인간관: 커텔이 '16PF 질문지'를 통하여 개인의 특질을 밝히려고 하였다는 점에서는 요소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려고 한 측면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단일 특성만 가지고는 복잡한 인간의 성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여 다변인적인 방법을 선호하였다. 다변인적 방법이란 '전체성'을 강조하는 접근 방법으로서,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여러 특질을 다각적인 접근 방법을 통하여 밝히는 연구 방법이다. 이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는 데 한 변수보다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는 역동적 특질인 에르그, 감정 및 태도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세 가지를 전체적인 틀에서 같이 고려할 때 개인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따라서 커텔은 전체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을 이해하려는 입장임을 알 수 있다.
300x250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