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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프로이트 정신분석이론 - 출현배경

by 울디 2022.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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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정신분석이론의 출현배경

 정신분석이론의 출현 배경으로는 프로이트가 활동하던 1900년대 빅토리아 문화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시대는 도덕성을 극도로 강조하던 시기였다.  오스트리아 빈의 아름다운 도나우 강, 왈츠, 카페, 그리고 사람들의 멋진 패션과 파티 등으로 화려했으나 그 이면에는 어두운 면도 많이 있었다. 빈곤과 인종차별 및 성도덕의 문란 등이 그것이다.  당시의 빈은 빈부의 격차와 매춘 그리고 질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는 심각한 경제 위기에 놓여있었고, 빈민굴이나 무허가 건물에 실업자가 우글거렸다. 빈의 시장인 카알 루에가는 반 유대인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이렇게 인간의 본능과 성욕을 억압하던 빅토리아 문화와 그 이면에 숨겨진 어두운 시대상의 반작용으로 성 본능을 중시하는 프로이트의 이론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은 다양한 이론의 영향을 받았는데, 첫째로는 다윈과 페히너가 꼽힌다. 영국의 생물학자 다윈은 '진화론'에서 주장하기를, 인간과 동물은 복잡한것을 빼고는 차이가 없기 때문에 결국 인간은 자연의 일부라고 하였다. 그리고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과학적 연구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고등동물의 신경계나 하등동물의 신경계가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과 개구리의 마음은 복잡성의 정도만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개구리도 연구를 하니, 인간도 연구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또한 19세기 독일의 위대한 과학자이자 철학자인 페히너는 인간의 마음도 과학적으로 연구할 수 있고 양적으로 측정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다윈과 페히너는 프로이트의 지적 발달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프로이트가 주장한 여러 개념은 '진화론'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조상을 동물로 보았기에 동물이 가진 성 본능을 중시하고 리비도를 성적 에너지로 여긴 점이 그렇고, 오이디푸스 혹은 엘렉트라 콤플렉스 등의 근친상간 욕구를 강조하였던 점, 자아를 이드에서 분화되는 것으로 설명한 점 등에서 진화론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로는 브뤼케와 헬름홀츠이다. 9세기 가장 위대한 생리학자이자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교의 생리학 연구소 소장을 역임한 브뤼케는 '살아있는 유기체는 화학과 물리학의 법칙이 적용되는 하나의 역동적 체계'라고 하였다. 한편 19세기 중엽 독일의 물리학자 헬름홀츠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을 주장하였는데, 에너지는 변형될 수는 있어도 파괴될 수 없기 때문에 에너지가 시스템의 한 부분에서 사라지면 반드시 다른 부분에서 나타난다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한 물체가 차가워지면 이 물체와 근접한 다른 물체가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와 같은 역학 법칙을 인간에게 적용했고, 하나의 역동심리학으로서의 정신분석학을 개발했다. 그는 이들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역학 법칙을 인간의 정신에 적용했고, 정신의 구조를 이드와 자아, 초자아로 나누어 이들의 역동성으로 인간을 이해코자 하였다.

 세번째로는 샤르코와 브로이어가 있다. 프로이트는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의 신경학자인 샤르코가 '최면요법'으로 히스테리 환자를 치료하는 작업에 동참했다. 히스테리의 어원은 그리스어 'Hystera'로서 여자의 자궁을 의미하는데, 대표적 증상은 경련, 마비, 몽중보행, 환각, 언어장애, 기억상실 등이 있다. 당시의 전문가들은 히스테리 증세의 원인에 대해서 크게 두 가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히스테리가 여성 성기의 이상 때문에 생기는 병이고, 이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난소에 압력을 가하거나, 얼음으로 차게 냉각시키거나 혹은 클리토리스에 외과적인 수를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샤르코는 히스테리 증상이 기능상의 질환이라고 보았다. 자궁의 이상이 아니라 신체에 이상이 있는 것으로 본 것이다. 반면에 프로이트는 히스테리를 심인성 증상으로 보았으며, 증상의 원인은 인간의 마음, 좀 더 구체적으로는 성적인 원인 때문이라고 하였다. 프로이트와 샤르코는 이러한 의견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별하게 되었다. 최면요법의 효과는 일시적일 뿐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점이 프로이트가 최면요법을 포기하게 만든 결적정 요인이었다. 환자를 최면 상태로 끌고 가서는 "더 이상 기침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지시할 경우, 최면에서 깨어난 환자의 기침은 없어질 수 있겠지만 그 기침의 원인까지 없어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원인을 제거하지 못했기에 재발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도 당연했다.

 이후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 빈의 의사이자 친구인 브로이어에게 '정화법'을 배우게 된다. 정화법은 환자가 자신의 모든 문제와 증상을 상담자와 대화하면서 직접 말하는 것으로, 감정을 발산하는것을 통해 증상을 치유하는 방법이다. 브로이어는 히스테리의 원인을 심적 외상으로 보았는데, 무의식 속에 억압되어있는 감정을 정화법으로 해방시키면서 증상이 사라진다고 하였다. 프로이트는 브로이어와 함께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정신분석이론의 기본 가정인 '정신적 결정론'과 '무의식적 동기'의 기본 틀을 형성한다. 브로이어는 21세의 여자 환자인 베르타 파펜하임을 치료하면서 정화법을 사용하였다. 이 환자는 심한 기침과 눈 깜박임, 오른팔과 목의 마비, 언어장애 및 물에 대한 공포증세를 보였다. 브로이어는 환자를 정화법으로 치료하면서 환자의 증상이 처음으로 일어났던 시점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그러자 환자의 증상이 사라졌다. 하지만 환자가 브로이어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상상임신과 해산진통이라는 새로운 증상이 발생하면서 정화법을 더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한편 브로이어는 히스테리의 원인이 성적인 것에 있다는 프로이트의 주장을 반대하였으며, 이러한 견해 차이로 두 사람은 결별한다. 프로이트는 정화법을 포기하지 않았고, 엘리자베스라는 환자를 치료하면서 정화법을 발전시켰다. 그는 환자를 긴 의자에 눕게 하고 환자의 이마를 손으로 누르고 질문하는 '압박 요법'을 처음 사용하였는데, 이 때 그녀는 프로이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제발 내버려 두세요."라며 화를 내었다. 프로이트는 이때의 일을 통해 압박요법이 환자가 생각을 자유롭게 이어가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치료자가 환자에게 무엇인가를 기억해 낼 것을 재촉하는 것이 옳지 않다고 여겨 압박 요법을 그만두었다. 그 후 그는 환자에게 어떤 것도 강요하지 않았으며, 단지 긴 의자에 편하게 눕게 한 후에, 그것이 아무리 하찮고 수치스럽고 엉뚱하고 기이하고 괴상한 것이라도 그때 그때 마음에 떠오르는 것을 모두 말하도록 하였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새롭게 시도해낸 '자유연상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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